“자, 오늘은 ‘가을의 전설’ 마무리 연습을 해볼까요?”
지난 7일 오전 8시20분, 영화 <가을의 전설> 주제곡인 ‘러들로’(The Ludlows)가 용이초등학교 3층 연습실에 울려 퍼졌다. 이 학교 5학년 정승빈군은 요즘 바이올린 켜는 재미에 아침에도 벌떡 일어나 학교로 온다.
한혜숙 수석교사는 올해 초부터 14명의 아이들과 함께 클래식 선율 속에서 아침을 시작한다. 매일 오전 30분 시간을 내어 플루트와 바이올린, 첼로 등을 챙겨 연습실에 모인 아이들을 지도한다. 플루트를 배우고 있는 이 학교 5학년 원서빈·박현수양은 “요즘 아이돌 그룹 노래보다 ‘아바(ABBA) 메들리’ 연주가 훨씬 재미있다”며 “호흡과 운지법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소리가 나오는 플루트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어렵고, 지루하고, 돈 드는 교육
‘클래식 공부’ 편견 깨는 수업 늘어
음악가·역사 배경 등 공부하거나
곡 해석, 느낌 그려보는 활동부터
사제동행 무대 준비하는 경험도
학교·사회 등 무료 레슨 창구 있어

반복 연습 뒤 무대에 서면 성취감 쑥쑥

한 수석교사는 재능기부로 ‘굿모닝 악기 연주 모임’(이하 굿모닝 모임)을 꾸리며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여러 사정으로 악기 교습을 그만둔 학생들을 다시 모아, 합주의 매력을 맛보게 하고 있다. 그는 15년 가까이 ‘평택교원플루트오케스트라’를 이끌어오며 클래식 교육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꾸준함의 힘이었을까. 지난 9월28일 평택남부문예회관에서 열린 교원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에 굿모닝 모임 학생들이 무대에 올랐다. 반년 만의 성과였다.
정군은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인내심이 생겼다”며 “아침에 친구들과 뛰어놀 수도 있었지만, 내 연주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꾸준히 연습에 참여했다. 이번에 무대에 서보니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악기 하나로 무대를 경험해본 아이들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방법도 자연스레 익힌다. 원서빈양은 “내가 플루트를 들고 소리 내기 시작했을 때, 관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빛나는 눈빛을 보고 감동했다”며 “평소 친구들과 대화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글로 소통하는 것도 좋지만, 음의 높낮이와 곡의 분위기만으로 무대 위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무척 새롭고 즐거웠다”고 했다.
한 수석교사는 “무대에 오르는 것만이 목표는 아니지만, 분명한 건 이런 경험들이 초등 시절 아이들의 자아존중감과 성취감을 높여준다는 것”이라고 했다. “악기 연습의 기본은 반복입니다. 그래서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죠. 하지만 시간을 들여 공연을 준비할 때, 아이들이 ‘일상 속 내 모습’과 ‘무대 위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며 제법 의젓하게 성장하는 걸 느낍니다.”

“악기교육만 클래식 교육은 아닙니다”

클래식(Classic)의 사전적 의미는 서양의 전통 작곡 기법이나 연주법에 의한 고전음악이다. 흔히 고급 악기를 배우거나 ‘우아하게’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이미지가 굳어져 학교 현장에서는 진입 장벽이 꽤 높은 교육 분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탓에 클래식 교육은 음악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편중된 경향도 강했다.
최근 공교육 현장에서는 클래식 교육이 아이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교육 과정으로 새롭게 자리를 잡는 추세다. 춘천교육대학교 음악교육과 정진원 교수는 “악기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도 당연히 클래식 교육이고 중요하다. 하지만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 등 굳이 악기 교습이 아니더라도 클래식을 쉽게 접해보는 창구가 많아지면서, 교실에서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클래식이 값비싼 악기를 연주하는 등 ‘상류층 교육’이라는 오해와 편견이 있죠. 하지만 아이들 수준에 맞춰 곡을 해석해보고 소감을 나누거나, 음악을 듣고 난 뒤 아이의 감정을 도화지에 표현해보게 하는 것도 클래식 교육의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술꽃 새싹학교’ 통해 1인1악기 배워

부모세대라면 음악 과목을 암기식으로 배워, 모차르트는 알아도 그의 곡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울산 함월초등학교는 ‘헨델의 생애 알아보기’, ‘베토벤 교향곡 듣고 자유 주제로 그림 그리기’ 등 악기 없이도 가능한 클래식 교육을 하고 있다.
비발디의 ‘사계’를 감상한 뒤 가을 풍경에 대한 느낌을 아이들끼리 이야기해보고, 바흐의 ‘평균율’을 통해 음악으로 구현된 수학 세계를 탐험해보는 등의 수업이다.
김지영 교사는 “고전음악이라고 하면 여전히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작곡가 등 인물의 생애나 곡이 발표된 시점의 역사 등을 재미있게 ‘스토리텔링’ 식으로 구성한다. 이렇게 수업하면 클래식 음악 한 곡을 들어도 인물사, 음악사, 역사까지 두루 접하는 ‘인문학 교육’이 된다”고 했다. “월 2회 시간을 내서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교실과 복도에서 멘델스존 이야기를 하거나 바흐 음악에 대한 감상을 나눌 때면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어요. 클래식 교육이 별다른 게 아닙니다. 정성 들여 만든 고전음악의 ‘맛’을 본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청소년 음악회를 찾아가거나 예술고교 진학을 꿈꾸는 등 취미와 적성을 발견하더군요.”
함월초는 인문학을 접목한 클래식 교육뿐 아니라 전교생 1인1악기 익히기도 꾸준히 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고 신한은행이 사회공헌사업을 통해 예산을 지원하는 ‘예술꽃 새싹학교’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이 학교 1~2학년 등 저학년은 미니 플루트 등으로 악기 다루는 기본 방법을 익히고, 3~6학년 등 고학년은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배운다. 김 교사는 “주 1회 1시간 이상 통합교과 및 음악교과 수업을 통해 ‘1인1악기’를 익히고 있다”고 했다.
함월오케스트라에서 제1바이올린 및 악장을 맡은 6학년 김규리양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제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게 취미가 됐다”며 “요즘은 연말 공연을 앞두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지역사회 손잡고 진행하는 교육도 있어

매원중학교는 올해 2회째 초·중·고교 연합 오케스트라 공연인 ‘예술로 행복한 엠(M)드림학교’를 개최했다. 교육부 악기지원사업을 통해 총 22개의 바이올린을 구비했는데, 매원중 관현악반에서만 수업을 하다가 반응이 좋아 그 대상을 지역사회로 확대했다. 클래식 교육의 중요성에 공감한 수원시 쪽이 지원 규모를 늘렸고, 올해 공연에는 수원시립교향악단도 참여해 민?관?교육공동체가 함께하는 축제로 성장했다.
조세원 교사는 “‘토요 엠(M)예술드림학교’를 운영하며 인근 매화초, 중촌초, 광교초 등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은 학생 20여명에게 매주 토요일마다 무료 레슨을 해주고 있다”며 “방과후 활동을 통해 교내에서만 운영하다가 지금은 관내 초등학교를 비롯해 학부모까지 참여하는 등 클래식 교육이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학부모 박기정씨는 “예술드림학교를 통해 교육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클래식을 자연스레 접할 수 있어 좋다”며 “학부모 우쿨렐레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연습실을 제공해줘 이번에 공연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클래식 교육으로 학교가 더욱 자유로운 공간이 된 것 같습니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연습하러 가고, 수원시향 선생님들과 지역사회 이야기도 나누고. 음악이 곧 생활이 되고 교육이 됐죠.”
김지윤 <함께하는 교육> 기자 kimjy1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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